파워

🔖 파워는 누가 사용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타래는 그에게 반항하지도, 그가 올바른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도 모른다. 그저 "그래, 난 할 수 있어. 그래,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할 뿐.


💬 위 인용이 거의 이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모든 것이다. 이 소설은 여성이 지배하는 것이 디폴트가 되었던 사회에서 한 '남류'작가가 아주 오래 전 과거에 어느 날 어린 소녀들이 맨손으로 남자를 죽일 수도 있는 '파워'를 가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상하여 쓴 내용이다. 즉 현재와 반대의 사회를 설정해 놓고 그 안에서 소설 속 소설로 어떻게 그 반대의 사회가 시작되었는가를 다룬다(그러나 이 남성의 상상일 뿐 소설 내에서 받아들여지는 사실은 아니다). 여성들에게 갑자기 주어진 '파워'는 너무나도 직관적인 이름으로, 손으로 전류를 내보낼 수 있는 힘이지만 이건 직관적으로 권력이다. 항상 주지사와 옥신각신하던 여성 시장이 파워를 얻고 나서 회의 자리에서 자신의 힘을 상기하며, 주지사가 뭐라고 떠들든 심드렁하게 속으로 나는 어차피 이 자리에 있는 남자들을 앉은 자리에서 죽여버릴 수도 있어, 하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라. (겉으로는 멀쩡한 직업인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사실 육체적 권력이란 이런 것이다. 실제로 이와 유사한 장면에서 현실에서는 남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여자가 자기 말에 반박하는 순간 속으로는, 아 쪼끄만 게. 어디 데리고 나가서 패버리면 되는데.) 그러니 이 경우 남성(현실의 여성)이 뭐라 대단한 주장을 하든 그걸 들을 가치가 있을까? 그러니 '가모장제' 사회가 되기 위해서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강력한 육체적 힘의 발현이었던 것이다. 오직 그것뿐이다. 현 권력 체계를 바꾸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힘의 부여, 이게 다른 미러링 스토리와 이 소설의 첫번째 차이점이다(보통은 그냥 여자가 지배하는 세계야! 라고 "설정해놓고" 출발한다.)

그리고 두번째: 흔히 말하는 '미러링'이란 내 생각에는 두 가지다. 사이다이거나 현 체제의 불합리성에 대한 고발. 예컨대 성추행 당한 여성에게 옷차림을 조심했어야지 라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바꿔 만약 남성이 이런 말을 듣는 사회라면?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많은 컨텐츠들은 결국 여성에게 그러는 것이 얼마나 웃기고 말도 안 되는 일인지를 생각하게 하며 일말의 통쾌함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흔한 미러링처럼 홍보되었음에도 그런 방향이 아니다. 여성에게 권력이 주어지고 남성들을 압제하기 시작하면 통쾌한 정의가 구현되는가? 혹은 지금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재치 있게 밝혀주는가? 파워가 발견되고, 번지고, 사용되어 세계를 바꿔놓는 과정은 전혀 아름다운 혁명이 아니다. 힘은 있는 자에게 사용될 뿐이고 그걸 가진 사람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이 힘의 속성이다. 사람들은 그냥 힘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며, 이 소설 속 소설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그 많은 폭력과 억압, 강간과 살인이 그런 식으로 발생한다. 이 소설의 목적은 여성에게 힘을 주고 여성이 그것으로 서로를 지키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데 있지 않다. 제목처럼 파워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갑자기 똑같은 환경에서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날까? 하는 질문을 생각해봤을 때 남자로 태어나면 살기 편하겠지, 근데 내가 뭐 때문에 편한지도 모르는 그냥 한남 될 것 같애 ..하는 생각을 했던 게 생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