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일기

🔖  점심을 먹고 부모님 집에 가서 산탄총을 찾아, 킨들을 중간에 사라진 <폼프리 타워>라고 상상하면서 쐈다(이미 스크린이 깨진 킨들을 이베이에서 10파운드에 샀다). 화면이 수천 조각으로 깨지는 것을 보니 놀라울 정도로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 내가 총으로 쏜 킨들을 낡은 나무 쟁반으로 만든 판에 고정시켜서 서점 안에 걸었다.

🔖  한 손님이 <성나게 하는 군중으로부터 멀리>를 찾았다. 내가 제목이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라고 여러 번 말해도 그는 단호한 태도로 아니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내가 계산대 위에 증거물로 그 책을 떡 하니 올려놓은 다음에도 이렇게 말했다. “뭐, 출판사에서 잘못 인쇄했겠죠.” 아주 성질나는 대화였지만 그래도 고마운 점은 있다. 언젠가 되었든 내가 요행히 은퇴를 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내가 쓸 자서전의 제목에 쓸 좋은 아이디어를 주었기 때문이다.

🔖  개인 소장 도서를 사기 전에 판매자와 값을 흥정할 때는 책들이 아주 화려하고 값어치 있어 보인다. 적당한 가격에 합의하고, 악수를 나누고, 수표가 내 손을 빠져나가고 나면, 그때부터 책은 투자한 값에서 한 푼이라도 회수하기 전까지 상자에 담아 승합차에 싣고, 다시 서점으로 옮겨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에 목록을 올리고, 가격을 매겨 책장에 정리해야 하는 짐으로 변하고 난다. 오웰이 언급한 혐오감은 책이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생긴다. 갑자기 책들은 처리해야 할 ‘일거리’로 돌변한다. 하지만 손턴의 <릴리스>와 같은 책을 마난ㄹ 때 느끼게 되는 진귀하고 강렬한 환희는 그런 혐오감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 2021 가장 최장기간 읽은 책(결국 22년 되어서 끝냄). 재미가 없어선 아니고 오히려 아주 재미있고 독특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스코틀랜드의 꽤 유명한 중고서점의 주인이 말 그대로 일기 형태로, 아마존과 괴상하거나 불만 많은 손님들에게 어느 정도 빡쳐 있는 상태로 쓴 글들인데 아주 전형적인 ‘냉소적이면서 웃긴’ 사람임. 읽는 데 오래 걸린 이유는 한 번 잡았을 때 지속적으로 읽게 되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고 일자별 에피소드별로 끊기는 구성이라서 개인적으로 이 설정, 이 인물들로 시트콤 만들면 보겠다 싶은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