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 AB: 내가 여자‘아이’였을 때, 나는 정말이지 여자아이인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자란 60년대는 여자아이인 동시에 삶을 누리고 인격을 가진 인간이 된다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였다. 내가 남자아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여자아이들과 나를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뭐랄까, 당시 ‘여자아이’에 대한 내 태도는 부정적인 쪽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에 내가 읽었던 여성에 대한 이야기들은 전부 다 멍청했다. 실제로 그랬다.

BK: ‘멍청한’ 소녀 이야기가 많기도 하다. 소녀들에 대한 ‘멍청한’ 이야기 말이다.

AB: 사실 어렸을 때 나는 남자와 소년들만 그림으로 그렸다. 남자들은 항상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멋지고 흥미로운 일들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나는 그런 식으로 나의 여성성을 대체해 버렸다. 내가 봤던 모든 여성 캐릭터들처럼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에) 다른 여자아이들과 맺은 관계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심지어 소녀들을 다룬 책도 읽지 않았다. 낸시 드루의 미스터리 시리즈나 루이자 메이 올콧의 책들은 읽고 싶지 않았다. 물론 결과적으로 <작은 아씨들> 같은 루이자 메이 올콧을 읽기는 했다. 좋은 작품이었고. 하지만 더 어렸을 때는 그런 책들, 그러니까 ‘여자애’들을 위한 책은 절대로 읽고 싶지 않았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내면화된 여성혐오. 하지만 현실이 그렇기도 했다. 누가 도대체 그런 폄하되는 인간이 되고 싶겠나? (그런 멍청한 캐릭터들과 나를) 절대 동일시할 수 없었다.

<벌새>에서 은희가 영지에게 스스로가 싫어진 적 없냐고 묻는 대사가 참 좋았다. 영지는 “응, 자주 그래”하고 답하는데, 정말 멋진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