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링킹

🔖 가방 속에 든 스카치는 내게 안전을 보장해주었다. … 그것은 욕구가 지나치게 강렬해졌을 때도 나 자신을 돌볼 수단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아버지의 그런 말들이 가감없는 사실의 진술인지, 그가 말함으로써 사실이 되어버린 암시인지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 나는 그게 좋았다. 감정을 그렇게 다루는 사람들, 속마음을 줄줄 흘리면서 통찰이나 분석적 사고니 하는 것들을 비웃어주는 사람들 틈에 있는 게 좋았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게 좋았다. 술집에서 그들과 나란히 앉아 똑같이 감정을 쏟아내면 해방된 도락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나는 술을 마시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좋았다. 뻔뻔하고 반항적이고 냉소적인 사람, 빈정대는 이야기로 친구들을 웃길 수 있는 사람, 그것은 내가 평생토록 찾아 헤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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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이 ‘딸각’하고 스위치를 올리자 익숙한 마법이 시작되었고, 나는 웃고 춤추고 섹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술이라는 정신의 마취제 없이도 하루하루를 밀고 나가는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막연한 기대를 하지 않으며, 개인의 진정한 힘과 희망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즉 자기 앞에 닥친 과제들을 하나하나 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뚫고 지나가는 것과 그것을 외면하는 것의 다른 점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멍청히 앉아 술을 들이켜다가 취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