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감각

🔖 이렇듯 대학교가 정부와 대통령의 반노동적 정책 기조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지식의 '생산자'가 아니라 친자본, 반노동이라는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내고 정권이 지지하는 지식의 '소비자' 역할만을 이행할 때 대학생들 역시도 노동권을 폄하하고, 결과적으로 자본과 기업에 유리한 사고방식을 갖게 될 것이다.
대학교가 인문•사회과학을 통해 학생들에게 철학적, 비판적 사유 능력을 길러주지 않는 것은 결국 친자본, 반노동의 틀 속에 '산업 인재'를 수급하는 공간으로 전락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학이 진정 지식 생산자의 본래 기능을 하고자 한다면 현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는 물론 한국 사회가 그동안 축적해온 교육의 '수단적' 기능, 즉 교육의 목표는 민주시민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하 는 것이 아니라,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것이고, 좋은 대학으로 입학하는 것은 취업 후 높은 연봉이나 '능력' 있는 배우자를 맞이하기 위한 것이라는 '한국적 상식'에 대해 오래고 깊은 성찰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때 많은 이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새치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 앞에 그들이 넘어올 수 없는 벽을 세워 정규직 노동자만 앞질러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새치기 아닌가요? 기업이 이 터무니 없는 새치기를 정당한 절차라고 말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든 새치기할 수 있는 위치에 서려고 애쓰는 게 아닌가요? 우리는 이 불합리한 줄 세우기를 없앨 수 있습니다. 줄곧 주창해 온 '공정한 경쟁'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만든 반인권적 구조에 반대할 수 있습니다. 공고한 차별 앞에서 무력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로 노동자에게 연대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 나는 학생들에게 줄곧 "상상력이 곧 지성"이라고 말해왔다. 지금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 누군가의 고된 삶, 부당한 경험, 어려운 상황, 모욕당한 기분 등을 일일이 묻고 책을 통해 확인해야만 비로소 이해하고 지식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 접하지 않아도, 직접 당해보지 않고도 자신의 경험 어딘가에 있을 그 어떤 것이 전장연의 치열한 시위 과정에서의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면, 즉 자기 경험에 대한 성찰성만 충분히 있다면 그 사람은 지성인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다, 라는 뜻의 사자성어 역지사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과 처지를 바꾸어볼 필요도 없이, 자기 경험 안에 다른 사람의 어떤 경험이 이미 분명하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경험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기만 해도(성찰) 그 안에서 다른 사람의 경험과 만나고 그 사람에게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렇듯 다른 이들의 손에 자신의 권리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장애인은 어떻게 문명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투쟁의 '내용'이 아니라 투쟁 '방식'을 문제 삼으며 시위 참가자들을 비난하는 정치인들은 사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야 할 만큼 절박했던 상황들에 무지하고 무관심한 자격 없는 이들이다. 나와 다른 삶의 조건을 버티듯 견디는 이들에 대한 상상력 빈곤은 지금처럼 다원화되고 복잡한 사회에서는 그 자체로 폭력이며, 이준석의 '비문명' 발언에서처럼 듣는 사람에게는 폭언이 된다. 이처럼 상상력의 빈곤이 폭력이고 폭언이라면 타자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은 치유의 문학이며, 영화고, 곧 예술이 된다. 우리가 대학에서 배우고 익히는 것은 타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사람들에게 용기가 되고 힘이 되고, 그렇게 해서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내는 예술이 되어야 할까.